ShenYun

반성없는 절망, 한국 정치사에 반복되지 말기를
DATE 16-12-02 05:26
글쓴이 : 어드민      

반성(反省)이란 말을 생각해봤다. 한자상으로 ‘되돌려 살펴본다’는 뜻인데, 성(省)이란 단어가 ‘생’으로 읽을 때는 ‘줄인다, 덜어낸다’는 뜻이라는 게 다가왔다. 결국 제대로 된 반성을 하려면 뭔가 덜어내고 내려놔야만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랄까. 이런 식의 접근을 한 선현도 있었다. 이규보가 ‘불생(不省)’이란 말로 인간의 욕심과 무반성 태도를 꼬집었다. 술독은 가득 차면 사람에게 덜어내 넘치지 않는데, 사람은 가득 차도 덜어내질 앓고 더 채우려고만 한다는. 
이를 인용한 한 칼럼니스트는 김수영 시인의 ‘절망’에서도 같은 지적이 있다고 말한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한국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반응이 그랬다. 대통령직 임기 단축 문제를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히고 “모든 것을 내려놨다”고까지 말했지만 믿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탄핵을 피하려고 꼼수와 노림수를 벌이는 것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반성이 제대로 안된 것 아니냐는 공격이다. 절망한 건 맞는데, 반성은 안된 절망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사실 절망은 당사자인 대통령만 느끼는 게 아니다. 현재 한국 정치 전체가 절망의 덫에 갖혔다. 국민의 촛불 열기로 당사자 대통령을 끌어내린다 한들 한국의 미래를 정치적으로 새롭게 이끌어갈 희망은 촛불만큼이나 밝은 것인지 묻게 된다. 
5년전 이집트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야 이후의 상황을 빗대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당시 100만 카이로 시민의 시위로 대통령 하야는 이뤄냈다. 그 때만큼은 승리에 도취한 이집트 시민들에게는 장밋빛 미래만 보였으리라. 그러나 이집트 시민혁명의 결과는 아직 아무 것도 바꿔놓지 못했다. 경제는 여전히 어렵고, 또 타락한 군부의 기득권 또한 그대로다. 혁명을 성취했지만 그를 이어 개혁을 이룰 인물도, 정치력도 발휘되지 못하고 시간만 흐른 것이다. 
반성은 현 대통령에게 너무 당연하지만, 한국 정치인들 모두가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어쩌면 이제 한국 정치인들도 포장된 정치력인 ‘politically correct’ 자세를 벗어나야 한다. 미국 대선에서 기득권 정치인이 그런 태도로 일관하다 처참하게 패배하고 정치와 무관했던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시류를 읽었으면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국 차기 대선을 꿈꾸는 지도자들의 행보는 아직은 실망이다. 단순히 시민운동의 여론에 동승해 인기나 높이려는 듯한 안일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 목소리에 숟가락 하나 얹는 식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실제 행동과 역량없는 정치관을 펼친다면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맡기기엔 약하다. 
로버트 팩스턴이 “환호하는 군중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버리면 오만한 믿음을 갖게 된다”고 정치가들에게 일침을 놓은 적이 있다. 결국 국민을 이미지로 속인다 해도, 그래서 당장은 성공한다 해도 결국 그 마지막은 패망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4년전 믿고 뽑았던 이들이 바로 그 상태 아닌가. 
사실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급부상한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성공 때문이었다. 2004년 국회가 노 대통령 탄핵을 가결했지만, 그 뒤 상황은 역풍이었다.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졌고 오히려 열린우리당이 이겼다. 탄핵 주도로 이제 뜨리라 여겨졌던 인물이 예상외로 정치판에서 사라졌고,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구세주로 부상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결국 정치판은 요지경이다. 예상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희망대로 펼쳐지지도 않는다. 정답도 없어 보인다. 오로지 ‘국민’이 정답이고 기준일 뿐.  
그런 국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 현명해야 할 시점이다. 무능한 대통령을 무너뜨린 열기를 새로운 미래를 여는 지혜로 승화시켜야 한다. 또 한번의 실수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럴려면 눈썰미부터 재충전해야 한다. 성대중이 사람보는 눈을 충고했다. 나약함을 어진 것으로 혼동하지 말고, 욕심을 성실로 착각하지 말기를, 잔인함을 의로움으로 잘못 보지 말기를. 
다산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도 다시 본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는. 반성과 지혜를 동시에 요구하는 말이다. 망한 대통령에게도, 또 새로운 결정에 직면한 백성에게도. 
<이준열 편집국장>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instargram으로 보내기
    

[뉴스] 가장 많이 읽은 기사
 
tail2_banner01
tail2_banner02
tail2_banner03
tail2_banner04
 
 
뉴스코리아  |  위플달라스  |  옐로우페이지 뉴스코리아 카카오스토리 뉴스코리아 인스타그램 핫딜뉴스코리아 뉴스코리아 e-paper 위플달라스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