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려는 자, 놔주지 않는 고통의 현실 직시하다
DATE 17-06-30 00:15
글쓴이 : 어드민      

30년 안에 지구를 떠나라. 인간이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최근 경고했다. 지구 멸망 이유는 소행성 충돌, 인구 증가, 기후 변화 등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인간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지구가 파괴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주장한 그는 화성과 달에 식민지를 세우고 노아 방주처럼 피난처를 만들어 지구 동식물의 종을 보존하라고 충고했다. 
앞으로 30년이면 잘하면 나도 지구의 종말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미 인류 멸망과 지구 종말 등의 계시록, 묵시록 관련 터무니없는 운동이나 종교적 주장들을 수없이 경험했던 터라 호킹 교수 말도 와닿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랬으면 하는 마음도 잠깐 일렁이는 건 무슨 심사일까. 
쾌락주의자였던 에피쿠로스의 말에 해답이 있다. 그는 “만일 신이 인간의 기도를 들어준다면 모든 인간은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위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고 말한 것. 지구가 망하길, 모든 인간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는 나는 잘 안되고 남들은 다 잘되는 것 같아 보여서 배가 아픈 심리가 깔려있다. 
이 얼마나 추한 마음인가. 변명한다. 그래서 나는 기도를 멈췄다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진솔한 마음으로 안하던 기도, 언제 남을 위해, 인류와 세계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 적이 있었던가 자책하면서. 
성공과 실패에 대한 자성이 필요한 나이란 걸 말하는 것이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했다는 “원하는 걸 가지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자기가 원한 성공이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것이다”란 말이 쓰리게 와닿기 전에 깨치려는 몸부림.
지구를 떠나듯이 홀가분한, 아니 도피적인 현실 탈출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어서일까.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올 미래를 꿈꾸는 이들을 부추기는 기사가 있었다. 허핑턴포스트가 “20년 안에 외계생명체 발견이 가능하다”고 썼다. 인류는 혼자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이야기다. 나사 천문학자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20년 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고 장담했다는 기사다.  
이는 어쩌면 지구가, 인류가, 그리고 내가 혼자이지 않을 수 있다는 공상으로까지 이어지며 구름에 뜬 것 같은 희열도 잠시 누리게 해준다. 물론 안좋은 증상이다. 비현실적이며, 비생산적인 마음가짐이다. 
허나 최인훈 작가의 글에 다소 위안은 있다. 그는 “인간을 미래로 열려진 지평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닫혀진 지평 속에서 환상의 초월만이 가능한 존재로 보느냐는데 따라 많은 게 달라진다”고 말했다. 
개인으로의 인간은 한정된 역사적 시간이라는 갇혀진 지평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인간을 그렇게만 본다면 인간에서 부정의 계기를 간과하는 것이라는 말, 또한 인간은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출하려는 존재며 그렇지 않다면 물체에 지나지 않으므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부단히 현실을 부정하여 나날이 새롭게 사는 길밖에 없다는 말도.
이렇게 ‘도닦는 것’ 같이 나름 가라앉았던 마음에 뜬금없는 돌들이 던져졌다. 일본 관련 기사들이다. 일본에서 프로 장기 사상 29연승의 기록으로 천재 소리 듣는 14세 중학생이 대국 도중 돼지김치우동을 시켜먹었다고 일본 극우 네티즌들이 난리를 쳤다. 김치를 먹었으니 한국인 편이고 그래서 일본 장기가 한국인에게 점거 당했다는 등의 헛소리다. 
또 있었다. 일본 영토문제담당상이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도발적인 망발을 최근 했다 하고, 애틀란타 주재 일본 총영사도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망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곳에 세워질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에 대한 증오의 상징이라고 반발한 것이다.
아, 잠잠히 다스리려던 감정의 수면이 돌팔매 당한 것처럼 파고를 일렁인다. 참 예뻐하기 힘든 나라다. 지구를 벗어나 환상의 세계로 숨으려던 내 감정의 발목을 잡아 불행과 증오의 늪에 또 빠지게 하다니. 
에피쿠로스로 다시 되돌아간다. 불행은 두려움이나 허영, 그리고 절제가 없는 욕망으로부터 나온다. 만일 사람이 이 감정들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자가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을 관조하는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다는 말.
어쩌라는 것일까. 떠나라는 말인가, 남으라는 말인가. 최악의 상황도 견딜만하다는 게 맞을까. 극한 고통은 짧은 시간 진행되지만 인생에서 누린 쾌락들에 비하면 그 고통은 별 것 아니라는 말, 그게 답일까.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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