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려 지킬 존재, 우리끼리 아니면 도대체 누구를
DATE 17-07-07 01:16
글쓴이 : 어드민      

굳이 전쟁에서 선(善)을 찾으라 한다면 없진 않을 것이다. 유명한 칠스 틸리의 말처럼 전쟁이 국가를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쟁을 통해 새 국가가 탄생하거나 위대한 지도자가 강성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실 세계 강대국들은 전쟁의 산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전쟁을 통해 몸집을 불려온 셈이다.
전쟁에서 늘 인용되는 존 스토신저의 ‘전쟁의 탄생: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에서도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물론 전쟁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경우 그 실수에 대한 대가는 전쟁이 수행되는 동안 천천히, 그리고 아주 오랜 고통 속에서 깨닫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 점에서 전쟁이 지닌 가장 큰 딜레마는 전쟁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큰 스승이 곧 전쟁 그 자체라는데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6.25 전쟁은 가치있는 전쟁이었을까. 존 톨랜드가 ‘6.25 전쟁’에서 언급했다. 그건 잔인성, 어리석음, 실수, 오판, 편견, 잔학행위로 점철된 전쟁이었다고. 그러나 그는 한가지 다른 점을 덧붙인다. “끔찍한 전장에서 용감하게 행동한 사람들, 자기희생을 무릅쓴 사람들, 그리고 적군에게 온정을 베푼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이 보여준 인간애, 그게 이 전쟁에서 건진 가치다.”
미국 순방길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방문지가 장진호 전투 기념비였다. 문 대통령은 감사했다.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곳에 한 그루 산사나무를 심습니다. 산사나무는 ‘겨울의 왕(Winter King)’입니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영웅적인 투혼을 발휘한 장진호 전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국을 의해 희생해준 우방국 젊은이들의 주검에 대해 진정한 감사를 표한 것이다. 그건 인류애적 당연한 예의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 첫 미국 방문에서 “6.25 전쟁 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장진호 전투 당시 철수를 결정한 미 제1해병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장군은 희생 군인들에게 말했다. “이 민족은 피를 흘려서라도 구해야할 가치있는 민족이다.” 그는 항공으로 철수해 미군들만 챙기라는 상부 지시까지 어기며 한국 피난민을 살리려 육로로 철수하며 중공군을 지연시켰다.  
스미스 장군같은 이들이 이곳에도 있었다. 지역에 거주하는 장진호 기념비 추진 관계자들이 뉴스코리아를 찾아 한인들의 후원을 호소하던 때,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리차드 케리 장군의 모습이 그랬다. 한인사회 행사든 기념식이든 그는 부르면 노령에도 빠지지 않고 달려왔다. 항상 군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는 “한국을 우리가 지키는데 도움이 됐다는 데 대해 자랑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전쟁 당시 그가 지켜주던 한국인들,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 이민와 함께 살고 한인들을 봐도 그는 똑같은 심정으로 대한다. 우리는 친구요, 나는 너를 위해 필요하면 목숨을 바쳐 싸울 수 있는 사이라고. 
처음에 케리 장군은 또 다른 장진호 참전 용사와 함께 방문하곤 했다. 어느날부터는 그 참전용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돌아가신 것이다. 늙고 죽어가는 용사들을 보면서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기념비를 만들고 싶다”던 케리 장군의 간절함은 마침내 성사됐다. 그리고 문 대통령의 헌화를 받았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잔인성과 죽음의 그림자만 나뒹굴 때, 삶의 희망이나 평화의 사치는 없던 때에도 인류애의 뭉클한 감동은 있다. 우리가 피 흘려서 구할 가치있는 존재였다는 울림으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해야 하는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 있다. 미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쏴대는 북 지도자가 들어야 할 말이다. ‘로마인 이야기’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내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내전이 잔인해지는 까닭, 그것은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고,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한 이에게 당한 배신과 공격은 더욱 아프기에 멈추기 힘들다는 말.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이렇게 갈라져 싸우는 존재가 됐을까.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가치있는 존재가 될 날이 있을까. 남도 그렇게 해주는데 왜 우리는 서로 죽이고 나만 살려는 적대적 관계에 놓인 것일까. 
기념비가 완성됐으니 이제 케리 장군 볼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볼 때마다 나름 부끄럽기도 했던 터라, 이제 안보는 게 낫다는 합리화로 그의 안녕을 빈다. 
<이준열 편집국장>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instargram으로 보내기
    

[뉴스] 가장 많이 읽은 기사
 
취업이민 닭공장
휴람
 
 
뉴스코리아  |  위플달라스  |  옐로우페이지 뉴스코리아 카카오스토리 뉴스코리아 인스타그램 핫딜뉴스코리아 뉴스코리아 e-paper 위플달라스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