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으로 접혀진 고국, 그곳에서 밥을 구하면 폐인
편|집|국|에|서
DATE 17-10-20 04:30
글쓴이 : 토부장      
여기서 지방가는 표도 팔아요? 아주머니들이 나에게 묻는다. 30년만에 모국을 방문해 행사장으로 가는 공항버스표를 사려고 줄서있는 ‘미국 촌놈’에게. 그것도 한 명이 아니다. 노인분도 나에게 묻는다. 여기서 표 사는 것 맞냐고. 하마터면 대꾸할뻔 했다. 저 한국 처음 왔는데요. 
싫지 않은 대접이다. 고국을 찾아 갓 방문한 자의 머뭇거림을 눈치채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에서 오래 살고 있는 친절한 아저씨로 보여 다가와 길을 물어도 될 이미지였다는 게. 그럼, 합격 아닌가. 황망하게 떠났던 고향과 모국으로의 무척 늦은 귀환 통과 심사로서는. 이제 모국에 대한 한을 떨치고 다시 엄마의 품 속에 안긴 것과 같은 위안, 아니면 그 어떤 해답을 찾아낼 가능성만 남은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런 환희는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고향을 찾기 오래전부터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애송하던 시귀를 떠올렸다. 황지우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고향’에서 “고향이 망명지가 된 사람은 폐인이다”고 한 말, 그리고 “고향에서 밥을 구하는 자는 폐인이다”던 말을. 또 기형도의 말도 되새겼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라고.
예상과 달랐던 거다. 건설로 빽빽하게 들어찬 건물들은 속병 있는 것처럼 회색톤으로 무거웠다. 도로들마다 최고급 외제차들과 택배 소형트럭들이 나란히 달리는 부조화는 왜 또 그렇게 많이 눈에 띄는지. 몇십년만에 보는 노모는 어떤가. 허리가 더 굳어 몸이 작아졌다. 자녀들이 떠난 고향의 집은 폐허가 됐다. 시인의 말이 그랬다. “출항했던 곳에서 녹슬고 있는 폐선처럼, 옛집은 제자리에서 나이와 함께 커져가는 흉터”였다. 그 시인이 바로 나였다. 그 축축한 옛집에서 영원한 출발을 음모했던 것/ 그게 내 삶이 되었다/ 그리움이 완성되어 집이 되면/ 다시 집을 떠나는 것, 그게 내 삶이었다는. 
모국도 노모처럼 여전히 반절로 접혀 있는 채였다. 언제 허리를 제대로 펴고 제 온전한 키를 천하에 자랑할 것인가. 남과 북, 좌파와 우파, 그 절반끼리의 싸움에 허리는 이전보다 더 확연하게 굽었다. 최근에도 진보적인 우리말연구회 출신 법관을 헌재 재판관으로 임명하겠다는 정부에 편향 코드인사라고 불만이 있지 않은가. 
내 모국 방문의 이유가 된 세계 한인 언론인들의 모임도 굽어진 모습이다. 북핵과 대북문제 해결을 고국에 주장한다지만, 실상은 고국에 뭔가를 기대고 뭔가를 뽐내려는 의도도 앞섰다. 그보다는 지역 한인 동포들의 삶에 더 역량있게 뛰어들 언론인들을 뒷받침해주는 모임으로 거듭났으면 했는데. 
고향은 그래서 향수의 대상이지 기댈 곳은 아니라는 말이 맞다. 잠시 길을 잃었을 때 원점으로 돌아가 길 찾는데 힘을 얻을 뿐, 그곳이 새로운 길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고국과 고향은 우리의 이해와 아량을 구하고 있었다. 갈라진 모습, 반으로 접혀진 모습, 불안한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달라고. 그 모습이 우리가 출발했던 자궁과 같은 지점이기에 다시 왔을 때는 그 모습을 그대로 사랑해달라고. 
결국 제자리 지키기가 답이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 정착한 우리들은 주어진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아나가는데 주력하면 된다. 그럴 때 우리를 떠나보낸 고국은 같이 윤택해지고 함께 높아져간다. 꼭 돌아와 새로 시작하고 뭔가를 되돌려주고 또 받으려 하지 않아도, 고향은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
멀리 이국땅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해외 동포들의 생명력에 고향과 고국은 눈물로 화답할 것이다. 사실 생명력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주라기 공원’에서 고고학 박사가 말한 것처럼 “역사가 남긴 교훈을 보면, 생명은 가둬둘 수 없다. 생명은 통제를 뚫고 나오는 법이다. 새로운 영역을 향해 고통과 위험까지도 감수하며 장애물을 돌파한다”는 증거가 우리 해외 동포들 아닌가. 
이민자들인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희망을 열어가야 한다. 그것은 루쉰의 말처럼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모국에 온 지 며칠만에 내 살던 그곳이 그립다. 동포들, 신문사, 그리고 우리 신문사가 전하는 소식을 보며 생명력을 발휘해가는 한인분들의 모습이 보고싶어졌다. 내 ‘밥’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준열  |  뉴스코리아 편집국장  editor@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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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ulchi 17-10-21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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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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