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뿌리, 이민자는 질긴 삶으로 응답한다
DATE 17-11-17 01:45
글쓴이 : 어드민      

한국이 세계 최장수 국가가 될 전망이다. 한국 여성의 기대 수명이 세계 최초로 90세를 넘었고, 한국 남성의 기대 수명은 세계 1위가 됐다는 기사다. 그런데도 반갑지도, 흥분되지도 않는다. 얼마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지인들이 “아프면서 오래 살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장수 한국’ 현실을 달가워하지 않는 걸 봤기 때문이다. 친척 노인 한 분은 돌아가실뻔한 걸 다시 살려 식물인간으로 생명을 연장시켰는데, 가족들은 반기지 않았다. 바쁜데 매일 요양원을 찾아 치매 노인 돌보는 일을 몇년째 하다 다들 지친 기색이었다. 그냥 돌아가시지라는 말까지 나왔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그때 또 했다. 잘 죽어야 그나마 살았던 때에 대한 기억을 긍정적으로 보존해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에밀 시오랑의 말처럼 삶만큼 죽음도 혐오스러울 순 없으니까 말이다. 하긴 시오랑은 “나는 나 자신이 역사 속에 존재했던 가장 끔찍한 존재, 불꽃과 어둠으로 가득 차 넘치는 참담한 짐승이라고 생각한다”며 ‘절망의 끝에서’ 죽음과 자살을 논했다. 그러면서도 “내 속의 짧은 번득임은 꺼져도 천둥과 번개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생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피력했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났지만 “아무도 내 글을 모국어로 읽어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에 30대에 프랑스로 귀화한 그는 변방인이자 디아스포라로 살았다. 그의 글은 삶과 죽음에 대해 통찰력있는 예리한 언어로 빛이 났지만, 그는 세상을 등진 채 고민하고 외로워했다. 그의 모든 번민과 괴로움을 토양 삼아 길러낸 철학적 사유와 저서는 그가 죽었어도 살아남았다. 
스페인 태생 첼로 거장인 파블로 카잘스에게 젊은이가 물었다. 당신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는데 95세 나이에도 아직까지 하루에 여섯 시간씩 연습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카잘스는 답했다. “왜냐하면 내 연주 실력이 아직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요.” 
유대교에서는 랍비 양성의 율법학교 1학년을 현자라 불렀고 2학년을 철학자라 불렀다 한다. 그런데 최고 학년인 3학년을 학생이라 불렀다. 나이 들어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시기가 드디어 됐다는 뜻일까. 
이건 사무엘 울만이 ‘청춘’에서 말한 그 유명한 말 “젊음은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증거일 수 있다. 또는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뜻일 수도 있다. 절망스럽고 소외된 삶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그건 도리어 나를 강하게 만드는 토양이 되리라는 말이다.
미주 평통 출범식을 순회하며 축사를 한 수석부의장이 미주 동포들에게 유명한 사자성어를 인용했다. ‘낙지생근(落地生根), 낙엽귀근(落葉歸根)’이다. 떨어진 곳에서 뿌리내리고, 늙으면 모국이라는 원 뿌리로 찾아오라는 말이다. 동포들을 위로하는 말 같으면서도 재촉하는 말이다. 한국처럼 해외 동포들의 수명도 늘어만 가는데, 좋은 마무리를 고민하라는.  
돈도 필요하고 성공도 필요하다. 명예도 중요하다. 가져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죽음 앞에 섰을 때 창피하지 않으려면 쌓아야 할 것들이다. 그것 뿐일까. 울만의 또 다른 시 ‘인생의 선물’에서 답을 찾아보자. 나는 가시나무가 없는 길을 찾지 않는다/ 슬픔이 사라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해가 비치는 날만 찾지도 않는다/ 인생의 어떤 곳이라도/ 정신을 차려 갈고 일군다면/ 풍요한 수확을 가져다주는 것이/ 손이 미치는 곳에 많이 있어서다.
이민자지만 삶을 고뇌하는 치열함과 성실함으로 살아냈다면 버릴 게 없다는 위로로 삼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나는 난파자들의, 극적인 밑바닥에서 태어난 사상을 믿는다”고 한 것처럼 이민자라는 변방인의 극한 현실에서 건져낸 삶의 철학과 신념은 간직할만한 가치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상 파울이 충고했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마구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이는 열심히 읽는다. 인생은 단 한번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주역이든, 단역이든, 엑스트라든 자기에게 주어진 배역에 최선을 다하고 무대를 내려오면 된다는 이야기다. 꼭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어떤 역이었나보다 주어진 역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최종 성적표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이민자들의 뿌리인 한국이 ‘장수’ 근(根)이 돼가고 있다. 그 뿌리의 가지인 해외 동포들도 그만큼 장수하게 된 것일까. 장수보다 삶의 근육이 질겨져 쉽게 부러지지 않는 나무가 되는 게 더 큰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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