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나면, 그 조각들로 살 수 있어 좋다
DATE 18-02-02 00:55
글쓴이 : 어드민      

마침내 사장을 끌어내리고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섰던 한국 MBC 방송국 소식은 신선했다. 편파 왜곡 보도를 지양한다며 뉴스데스크 인물도 다 쇄신했다. 이제 시청자들의 환호 속에 질주할 일만 남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시청률에 발목이 잡혔다. 교체된 지 한달이 넘었는데도 시청률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식이다. 그것도 뉴스 시청율 ‘마의 2%’대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날도 많아서 고심에 빠졌다는 것이다. 

국민을 배신한 나쁜 뉴스, 나쁜 앵커, 나쁜 국장, 사장이 교체됐으니 응당 시청률로 화답해줄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또 다른 배신일까 싶다.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시청률이 모든 걸 말해주는 한국 방송 현실에서 초조한 건 감추기 어려울 터. 

이유에 대해 말들이 많다. 결정적으로 새해 초 방송된 뉴스데스크 ‘새해 화두 개헌, 시민의 생각은?’ 관련 리포트에서 일반 시민인 것처럼 인터뷰한 사람들이 알고보니 MBC 인턴기자와 그 친구들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신뢰성에 치명타를 맞은 게 거론된다.  방송국이 원하는대로 여론을 얻어내려고 위장 인터뷰를 한 셈이니 혼날만도 했다.   

과거를 청산하고 색깔에서 선명하게 보이고자 치우친 편성을 하다 보니 ‘팩트’가 아니라 ‘메시지’가 앞서는 뉴스를 내놔 거부감을 준다는 지적도 있다. 시청자들의 눈을 되돌리려고 서둘러 큰 거, 자극적인 뉴스를 만들려다 오보마저 있었으니 시청률의 반등을 어렵게 했다. 올해 그래미 시상식이 ‘정치색 논란’으로 시청률이 21%나 감소한 것과 무관치 않다. 

마치 ‘우리만 정의롭다’는 식의 우월성을 갖고 가르치고 주입하는 듯한 뉴스 전달에 시청자가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인데, 남의 일 같지 않게 와닿는다. 미주 이민 한인 커뮤니티에서 언론사 일을 했다는 사람으로 되새겨볼만한 일이어서일 것이다. 

솔직히 지역 신문사 포함 언론사들의 상황은 한국 대형 방송사나 신문사와 비교안될 정도일 것이다. MBC를 감히 논할 위치가 아닐 정도로, 여기서도 기사 보도에 눈치볼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아예 ‘가진’ 누군가의 대변자가 되는 일도, 아니면 반대로 누구의 저격수 역할을 하는 언론인도 있다. 사주와 광고주의 눈짓을 보며 펜을 든다고 자백하는 언론인들은 그나마 솔직한 편이다. 굳이 ‘돈에 구애받지 않겠다’고 큰소리치다가 헛소리로 판명되는 자칭 ‘홀로 의로운 언론인’보다는 정직해서다.   

그걸 탓할 수만은 없다. 언론사도 사업체고 또 월급주고 수익내기 위해 운영하는 곳이니 말이다. 그러니 솔직하게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이라도 되게,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고 할 능력 안되면 그저 정직과 중립의 자세로 최선이라도 다하겠다 말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위선보다 차선이 그래도 낫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계의 숱한 지각 변동을 지켜보며 개인적 성찰이 뒤따른다. 누군가 써놓은 우스갯글 “스물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며 돌을 들었고, 서른에는 아내를 바꿔 놓겠다며 눈초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아이들 바꾸고 말겠다며 매를 들었고, 쉰에야… 바뀌어야 할 사람이 바로 나임을 깨닫고, 들었던 것 다 내려놓았다”에 직격탄을 맞고 폭소하면서 운다. 

아프게 애송하던 시 구절이 현실이 된 것 같아서다. “높다고 해서 반드시 명산이 아니듯,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어른이 아니지요”라고 했던 시인 이채의 말은 바늘처럼 따갑다. “성숙이라 함은 높임이 아니라 낮춤이라는 것을,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라는 것을” 조금 깨달았다면 그나마 남는 삶을 산 것인가.

그것이 언론이든, 개인적 삶의 성찰을 통해서든, 세상을 바꾸려던 노력은 겨냥이 잘못 됐다. 마치 영화 ‘염력’에서의 말처럼 “진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이기도록 태어난 자들”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온갖 재주부림에 좀 신중했을까. 그러나 그 모든 내공의 이유는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도, 구해야 할 이들은 구할 수 있다”는 목표로 수정하면 명분은 선다.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 하나는 일보다 중요한 게 관계라는 것. 일은 실패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사람과 관계는 한번 깨지면 회복하기가 힘들어서다. 또 하나는 뭔가 깨졌다 한들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생명은 아스팔트 위 꽃처럼 피어날 수 있기에. 정호승 시인이 ‘산산조각’에서 썼다. 바닥에 떨어뜨려 산산조각난 불상을 부치려고 애쓰는 그에게 부처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말했다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이준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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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임 18-02-1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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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기다려지는 데스크칼럼이 고별이라 아쉽습니다, 그나마 달라스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칼럼습니다. 현실 정치 사회에 칼날같은 날카로움이 주는 공감 시와 고사성어로 독자를 편하게 읽게 하는 칼럼이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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