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과 EMQ, 요술과 목청으로 살 일이 아니다
DATE 18-04-20 01:27
글쓴이 : 어드민      

아마 내가 중3이었을 것이다. 전라도의 중학교에 당시 유명 트로트 가수가 방문했다. 무슨 학용품을 싣고 왔을 것이다. 자신이 전라도 출신 가수이기에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가 남기고 간 건 학용품만이 아니었다. 엽서를 잔뜩 남겨놓고 갔다. 학생 1명당 몇장씩 떠맡았다. 

당시 방송국 가수왕은 엽서 받은 수로 결정했다. 같은 동향이니 밀어달라며 학생들마다 엽서를 몇장씩 써서 보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우리 학교만이 아니었다. 지역 모든 학교를 돌며 엽서를 나눠줬다. 

내가 왜 그 엽서를 보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거부했다. 선생님은 동향 선배가 가수왕 해보겠다고 하는데 모른 척 도와달라며 학생들을 독려했다. 어쨌든 그는 내 엽서 없이도 그 해 가수왕에 등극했다. 얼마나 많은 엽서를 뿌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렇게 그는 평생 단 한번의 가수왕을 마술처럼 차지했다.

지금 생각하면 엽서 몇장 써주는게 뭐 싫다고 반대했을까 싶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 가수왕은 노래로 승부해야지, 이렇게 엽서팔이를 해서 얻으면 그게 진정한 가수왕이냐는 치기가 있었다. 사실 그 가수가 무슨 죄일까 싶다. 가수를 평가하는 기준을 엽서 수로 한다는 구조 자체가 악이용 당한 것일 뿐. 또 그렇게 뽑힌 가수왕을 방송사도, 가수들도, 그리고 시청자도 수치심 없이 받아들였으니 누굴 탓하겠나. 

한국에서 요즘 댓글 여론 조작의 주범인 ‘드루킹’ 때문에 정세가 심상치 않다. 여론과 민심을 조작해서 대선에서 그 위력을 발휘했다니, 지금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정치력으로 인정받아 된 것인지, 엽서처럼 드루킹 조작 마술에 놀아난 것인지 혼돈스럽다. 

도움 받은 쪽에서는 이제 와서 그런 일 없다, 모르는 인물이다며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지만, 도움 준 쪽에서는 대가를 받고 싶은 게 남았으니 그냥 있을 리 없다. 실체가 드러나면 웬만한 게이트 못지 않은 대형 폭탄이 될 수 있다. 

안쓰러운 건 새 정권이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품고서 숨긴 채 버텨보려고 했다면, 이전 정권들 붕괴를 본 마당에 불가능했다는 걸 몰랐을까 싶은 거다. 더군다나 이전 정권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같은 죄목들을 문제삼았을진대, 이제 똑같은 행태가 발각되기 시작했으니 이를 어떻게 건너갈 지 궁금할 뿐이다. 권세자들의 ‘18번’인 ‘내로남불’로 충분할까 싶다. 

염증을 느낀다. 정치가를 정치적 역량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왜 드루킹 같은 이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나라가 됐을까다. 이러니 순수하게 정치력을 쌓기보다 상대방을 흠집내고 그 인기를 떨어뜨리는 조작으로만 손쉽게 승부하려는 행태들이 반복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상대방을 부도덕하게 보이게 해서 이익을 취하려는 정치가 가장 하수라는데 그걸 현란하게 보여준 셈이다. 대처 총리도 지적한 말이다. “강자를 약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약자를 강하게 할 수 없다”고. 강자를 상대해 내가 강해지고 실력있어지기보다 거짓 여론과 조작으로 상대를 나쁘게 만드는데 먼저 골몰했을 정치인들. 그렇게 해서 강한 자의 자리에 오른다 한들, 속 빈 강정처럼 들통나고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드루킹은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인 ‘자연의 힘을 이용해 술사를 부리는 마법사’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의 조작 마법과 주술이 결국 진실 앞에 정체가 다 드러났을 때 이 무협지의 끝은 어찌될 지 우려된다. 

또 다른 특이한 이름이 눈을 끈다. EMQ다. 광고대행사 직원에 갑질을 하고, 집무실에서 직원들에게 욕설과 고함으로 논란을 빚은 대한항공 차녀, 전무의 코드명이다. 영어 이름 ‘에밀리’에 ‘마케팅 여왕’ 단어 앞 글자를 땄다는데, 좋은 의미의 코드가 아니다. ‘공포의 그녀, EMQ가 떴다’고 회사원들끼리 급하게 부를 때 썼을 코드명이니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실제 그녀 육성 녹음을 들어보니 그 분노 표출이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이 맞다. 코리아라는 이름까지 물려받은 재벌 딸이 왜 저렇게 발악을 하면서 남에게 공포와 혐오를 불러일으키며 살아야할까 싶었다. 뭐가 그렇게 부족하고 불만이며 모자란 것인지. 우리 평범한 이들은 그보다 훨씬 부족하고 못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린들 악쓰고 싶은 때가 없을까. 크게는 요지경속 정치판에 대해, 작게는 주변 세상사 맘 같지 않은 것에 발악하고 싶은 적이 한 둘일까. 요술 부리고, 목청 쓰는 대신 몸으로, 땀으로, 정직으로 살 뿐이다. 
<이준열 뉴스코리아 부사장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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