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 노숙자
김예린이 쓰는 감성 손편지
DATE 18-02-09 04:43
글쓴이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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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만 해도 앙상했던 고로쇠 나무의 어깨가 어느결에 부풀었고 수채화 물감 번지듯 아스라한 물빛이 온몸을 휘감고 있다. 그뿐인가. 생애 최초로 붉어졌을 순정한 여린 잎들이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언뜻 보풀보풀 뭉쳐 박태기꽃같아 보이는데 채 잎을 펴지 않은 그 앙증맞은 모습이라니! 가위바위보 다음에 뭘 낼까 궁리하고 있는 천진한 애기의 고사리 주먹 같아 싱긋 웃음이 난다. 사실 고로쇠만큼 일생을 상처투성이로 견디는 나무도 없다. 고로쇠의 수액은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탐욕스런 사람들은 나무가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겨우 숨 돌리기 시작하는 이른 봄부터 드릴로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아 수액을 받아내는 것이다. 링거줄처럼 주렁주렁 호스를 매달고서 혹독한 고통을 견디는 고로쇠 나무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자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꼭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것만 같아 볼 때마다 괴로웠었다. 우리집에서는 바라보기도 아까운 그 나무를! 하지만 고로쇠는 그 처절한 절망에도 굴하지 않는다. 절망의 끝은 희망임을 아는 것일까. 박혀드는 시퍼런 칼날들을 온몸으로 받고 견디며 저리도 어여쁜 새잎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시낭송가로 제법 이름이 나있는 후배에게서 소포가 왔다. 얼마전 시낭송 녹음을 마쳤다길래 좀 보내달랬더니 기꺼이 부쳐 온 것이다. 정 많은 그 아이는 보따리 보따리 오밀조밀 요긴한 물품들을 잔뜩 싸서 함께 넣어 보냈다. 사실 CD만으로도 흥감한데 말이지 그 마음 씀씀이라니…….

“흔들릴 때마다 시를 외웠다” 표지에 적힌 문구가 그를 말해주었다

마종기님의 ‘우화의 강’, 손택수님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 등 얼마나 맛깔스럽게 낭송을 잘하는지 몇 번씩이고 되돌려 들어도 물리지가 않았다. 어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살갑고 정다워서 귀를 적시고 더 마음을 붙드는 것이다.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하고 다재다능한 아이였지만 시낭송가라는 매력적인 분야에서 활동한다니 놀라웠다. 
후배는 믿었던 이에게 전 재산에 해당하는 돈을 잃고 설상가상 집에 화재까지 나서 창졸간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한겨울 매서운 칼바람이 뼈마디를 가르듯 시리고 참담했지만 가진 게 절망밖에 없으니 절망을 재산 삼아 놀기로 했다는데. 그 절망을 어루만져주며 놀아준 게 바로 시였다. 그렇게 시를 읽고 외우다보니 자연 시와 흠뻑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길거리에서 노래를 버스킹하듯 그녀는 길에서 시를 낭송하곤 했다. 낯선 풍경에 처음엔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지나쳤는데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팬들이 늘어났다. 하루는 공연이 끝나자 웬 노인 한 분이 명함을 주며 간곡히 부탁을 해왔다. 다름 아닌 노인 대학에 와서 시낭송 강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인연을 계기로 후배는 노인 대학에 출강하게 되었다. 부모님 같은 분들이 함께 시를 낭송하고 시를 외우는데 치매 예방도 되고 인문학적인 노후를 맞게 되었다며 더할 수 없이 좋아하신단다. 후배는 그렇게 차츰 이름이 알려져 일반 대학 강사로, 또한 갖가지 문화 행사에 초청되어 공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  

젊은 날, 한라산을 오를 때의 일이다. 발목이 삐끗해서 퍼렇게 멍이 들고 금세 퉁퉁 부어올랐다. 우리를 인솔하던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들 더 이상은 무리라며 쉬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고지가 눈앞인데 다 와서 포기하다니 너무 억울했다. 그렇다고 계속 오르겠다고 떼를 쓰자니 폐가 될 것 같아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아이가 일행에서 떨어져 내 곁에 남았다. 곰살맞게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며 달래주는가 싶더니 발목을 쉴 새 없이 주물러 주었다. 그 덕에 발밤발밤 오를 수 있었고 끝내 백록담까지 갈 수 있었다. 함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줄기차게 오르막길이어서 보통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헉헉대며 주저앉으려 할 때마다 “아따 시방 여그서 노숙자가 될 참이여? 한라산 노숙자라, 타이틀이 괜찮허네잉. 그란디 이왕이믄 백록담 노숙자가 더 멋있겄는디! 뭐든지 시작이 있으믄 끝이 있당게. 쉬엄쉬엄이라도 끝까지 가보드라고~ 언니가 암만 아프다고 혀도 내가 대신 가줄 수는 없제만은 같이 가줄수는 있잖여.” 목포 출신인 그녀는 부러 익살스럽게 사투리를 구사하며 내 의지를 북돋우고 기운을 자아내려 애썼다. 그녀의 애씀이 고마워 다시 일어섰고 끝내는 백록담에 안길 수 있었다. 그때의 감격이라니! 한라산의 정상에 오를 수 있어서 꼭 감격스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힘든 내 곁을 누군가가 함께 해주었다는 사실이 그토록 뭉클했던 것이다. 한라산은 내게 두 가지 선물을 주었다. 절망에도 꽃은 피고 그 꽃을 피우게 하는 힘은 바로 함께라는 것.

새해가 시작된 게 엇그제 같은데 벌써 1월이 다 갔다. 새해의 그 강강하고 씩씩했던 다짐은 다소 시들해졌지만 절망 끝에 툭툭 새 잎을 밀어올리는 고로쇠 나무가, 산이 높아 골이 깊어진, 절망을 희망의 동의어로 생각하는 그녀가 곁에 있어 여전히 새.해.에 방점을 찍게 한다.

“누구나 설레임으로 받아보는 손편지, 작가 김예린이 그 닮은 마음 자리 하나 내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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