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가 돌아왔다!
김예린이 쓰는 감성 손편지
DATE 18-03-09 10:00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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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시키는 일들은 다 기꺼웁다. 풀을 뽑고 흙을 뒤집고 거름을 주고 허리가 아파 기어다니면서 일을 하더라도 신명이 난다. 닳아서 아픈 손톱마저 그 밑에 새까맣게 박힌 흙마저  충만한 기쁨을 준다. 봄에 몸을 담근다. 시린 겨울을 건넌 알알한 뭇 생명들의 숨결이 마음에 출렁거리기 때문이다. 바람에 나부끼는 건 여린 잎들뿐 아니다. 온몸이 살랑 나부낀다. 허심히 꽃잎이 되어도 좋겠다 싶어지는 봄. 봄비 속에 수선화가 수런거리는가 싶더니 실핏줄이 비칠듯 말간 뺨으로 막 봉우리를 터트린 살구꽃, 벼랑뿐인 허공에서도 은은하게 평화로운 사과꽃, 고슬고슬 지어진 밥알같은 박태기꽃! 사방천지에 생명의 눈망울들이 반짝거리고 있다. 
그중에도 각별히 반가웠던 것은 자두꽃이다. 물길인줄 모르고 잘못 심은 탓인지 심은 첫해부터 심한 몸살을 앓았다. 터를 옮겨주고 온 마음을 기울여 보살펴도 꽃은 커녕 그대로 말라버리곤 했다. 겨우 몇 잎 달린 이파리가 이른 봄부터 단풍 든 채 힘없이 져버리고. 뚝뚝 붉은 눈물을 떨구는 것 같아 마른 등걸을 쓸어주던 손이 퍼석거렸다. 그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여전히 앓고만 있던 나무. 어찌해줘야 할 지 남편과 걱정이 깊은 채 속절없이 세월이 흘렀다. 
가열차게 맹렬히 솟구치는 꽃들 한 가운데 쇠잔한 그 모습이라니. 사람들은 보기 싫은지 볼 때마다 베어버리라고 했다. 그만큼 나무로서 아무런 역할이 없었던 것이다. 꽃도 푸르름도 열매도 없는 나무, 그 가치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럼에도 어쩌지 못하고 다른 녀석들보다 더 살뜰히 보살폈던 것은 가지에 느껴지는 물기 때문이었다. 안간힘으로 견디는 게 안 보이나요?  버티고 있는 게 보이지 않나요? 젖은 몸으로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주변의 나무들이 그의 동료들이 그의 젖은 목소리를 알아 듣고 구원의 손길을 뻗쳤는지 모른다. 나무들도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뿌리를 탁탁 쳐서 2백헬츠가 넘는 주파수로 병들고 약한 이의 기운을 북돋운단다. 그래서였을까. 그 어느 나무보다도 그 어느 꽃보다도 해사한 모습으로 빼곡히 꽃을 피우며 자두가 돌아왔다. 동료 나무들 뿐 아니라 햇살 바람 비 만물이 한 마음으로 자두를 붙들어 주었던 듯 환하게 자두를 반긴다. 이야, 어떻게 그 병고를 이겨냈을까. 정말 멋지다 연신 감격에 마지 않는 남편의 얼굴이 자두꽃만큼이나 활짝 펴졌다. 
불쑥 수 십 년전 읽었던 오에겐자부로의 개인적체험이 떠올랐다. 첫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이다. 말랑말랑한 아이의 감동이 몸에 속속들이 배어 있었을 때 읽어서인지 소설이 주는 여운은 강렬했다. 무라까미하루끼에 열광하던 젊은 날의 내게 오에겐자부로가 깊숙히 자리하게 되었던 아프게 아름다운 소설이다. 자두의 회복은 나로하여 개인적체험을 다시 꺼내들게 하였다. 겐자부로를 작가로서 존경할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좋아하는 것은 그가 보여준 삶의 경로 때문이다. 
주인공 버드가 탈뇌아를 낳고서 겪는 일탈과 치명적인 고통을 통해 작가는 역설적으로 공생에 관해 얘기한다. “분명 이건 내 개인에게 한정된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이야” 자신이 낳은 장애아 아기가 죽기를 바라는 부모로서의 끔찍한 공포심을 극복하고 결국 아기와의 공생의 길을 선택하는 버드. 
실제로 겐자부로는 정신박약에 간질까지 겹친 중증 장애인 아들인 히카리를 기르면서 공동체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절대 약자인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삶을 모색하고 자기 중심의 삶에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이타적인 삶을 실천해오고 있는 겐자부로. 정치적 무관심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운동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서로 물고 뜯고 배신이 판치는 정치에 냉소적이었던 젊은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지름길임을 이제는 안다. 개인적으로 나보다 약자인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도와주는 지극히 일차적인 방법에서 더 나아가 사회가 약자들을 책임지고 돌볼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보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공동체적 삶이 향유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살 때까지 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식물인간이나 다름 없는 아이에게 겐자부로는 바흐 모짜르트 등 클래식음악을 되풀이해 들려주었다. 아니 들을 거라고 믿었다. 아버지의 믿음과 정성은 헛되지 않았다. 히카리는 마침내 일본 음악계에서 개성 있는 클래식 작곡자로 인정 받았다. 클래식 음반계에서는 이례적으로 10만장이 넘는 음반이 팔렸고 지금도 꾸준히 그의 음악이 사랑 받고 있단다. 때묻지 않은 그의 순수한 정서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히카리는 빛이라는 뜻이다. 아픈 히카리가 빛이 나기까지 끝까지 붙들어준 부성애, 그 부성애의 파장이 여리고 약한 사회의 구석진 자리까지 이어졌기에 히카리 그의 생은 빛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상처를 견뎌온 자두가 궁극에는 빛나고 있다. 상처를 견딘 자, 그 상처를 붕대로 싸매준 빚진 이들에게 빛으로 답하고 있다. 빚이 빛이 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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