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슬초맘의 작은 행복찾기
DATE 18-05-21 05:34
글쓴이 : 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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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사십이 다 되어 다시 늦깍이 학생이 되었던 슬초빠가 지난 일 년 간의 히스패닉 교회에서의 목회자 인턴 과정을 마쳤습니다. 둘 다 소속이 미국 교단이기에 교단의 신학이 미국의 로컬 교회들 안에서 실제 어떻게 구현이 되고 있는지를 배우고 동시에 목회 전반에 걸친 실제적인 경험을 쌓기 위해 굳이 인턴 과정을 미국 교회에서 하기로 지원했었더랬습니다. 
곧이어 우리 부부가 다민족 사역에 대한 비전이 있는 것이 인연이 되어 DFW 도시 빈민 지역에 위치한 한 히스패닉 교회에서 인턴 과정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슬초맘 역시도 교단 내에서 스페인어 과정으로 목회 라이센스를 받은 경력으로 인해 같은 히스패닉 교회의 부사역자로 다시 임명이 되어 한국 교회에 이어 히스패닉 교회에서도 부부 부사역자로 섬기게 된 것이 작년 4월의 일입니다. 
돌아보면 정신없이 지났던 한 해입니다. 히스패닉 교회에서 유일한 한국 사람이었던 슬초네 부부가 풀어나가야 할 난제들은 체류와 재정, 질병, 가정 파탄 등과 같은 문제가 있는 스페인어 사용자인 이민 1세대 성도,  학업 부진, 자퇴, 마약, 분노, 폭력, 우울증 등과 같은 문제들로 힘들어 하는 영어 사용자인 이민 2세대 성도, 기초가 없는 교회 재정과 행정, 그리고 공공연히 범죄와 매춘이 벌어지곤 하는 지역 커뮤니티였습니다. 
급한대로 슬초빠가 임시 유스 사역자로 섬기기 시작했고, 이중직 사역자인 슬초맘도 정해진 목회 사례비를 모두 다시 교회 사역을 위한 재정으로 돌리고 지역 선교에 마음이 있는 미국 교회들과의 후원 체계를 다시 세워나가며 교회를 살리기 위해 바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눈썹이 휘날리도록 바쁘게 뛰어 다니며 지냈습니다. 
섬기는 커뮤니티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불법 체류 상태인데다 소득 수준이 미국 평균 소득의 25% 이하이고 중남미 특유의 주술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섬기는 동안 한국 교회에 있을 때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더랬습니다. 
교회 행사에 아이를 맡겨 놓았다가 픽업을 오던 아이 엄마가 교통 위반으로 경찰에 잡혀 돌아오지 못하고 추방되어 버린 일,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거리에 나앉게 되자 교회 쓰레기 수거장 담벼락에 잠자리를 마련하신 분, 주일이면 배가 고파 교회로 찾아 와 끼니를 해결하시는 분들, 주술을 받다가 악령이 들려 교회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신 분, 추운 겨울에 전기가 끊겨 실내에서 나무를 태우며 버티시던 분들, 길거리에서 몸을 팔기 위해 운전자들과 흥정하는 어리디 어린 소녀들. 게다가 이번 봄엔 노후한 도시 가스관으로 인한 가스가 새어 가정집이 폭발하는 사망 사고가 일어나 성도님들 중 많은 분들이 대피를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출애굽 시대의 노예 백성 히브리인이 살던 땅 고센, 이 지역은 DFW 사회에서도 가장 낮고 천한 일을 하는 달라스 시민 아닌 시민이 살아가는 ‘현대판 고센’이었습니다. 
좋은 세상 직장 혹은 좋은 학교에 다니며, 좋은 대형 한국 교회에서 전도사님 소리를 들으며 예배를 인도하거나 선교지의 선교사님들께 후원금을 보내며 사례비를 누렸던 고상한 지난 시간들과 달리, 성도 한 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뛰고, 배고픈 성도들을 먹이기 위해 오히려 사역자가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했던, 세상적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슬초네 부부가 사명과 목회 방향을 재확인하고,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과 쉬지 않고 일하시는 성령님을 다시 만나기에 충분했던 복된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부 부목회자로서의 짧은 사역의 마지막 주. 이제는 자원 봉사자가 되어 종종 다시 찾아오게 될 슬초맘과 슬초빠 부부를 위해 교인들이 교회를 가득 메우고 꽃다발과 풍선과 직접 쓴 손글씨가 가득한 액자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집에 와서 액자에 영어, 스페인어로 그리고 혹은 서투른 한국어(!)로 빽빽하게 적어 주신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가는데 문득 ‘우리 안에 남겨 주신 그 흔적에 감사합니다’라는 문구에서 눈이 멈춰지며 눈시울이 젖어옵니다. ‘흔적’. 우리 역시도 우리 안의 그 ‘흔적’으로 인해 이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벽에 걸 액자가 하나 더 늘었고,  우리 안에도 흔적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이렇게 흔적을 남기고 흔적을 지니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신앙인의 삶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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