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란 무엇인가?
3월부터 불어닥친 코로나 폭풍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다. 벌써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코로나는 잠잠해 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업하는 사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 학생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답답함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나고 있다. 교회가 잠시 실시간 예배를 드리자고 했던 시간도 벌써 반년 가까이 지나가 버렸다. 실시간 예배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었던 몇 달 전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실시간 예배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축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실시간 예배는 우려했던 대로 많은 문제점을 가져오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American Bible Society)에서 신앙생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코로나 이전에 매일 성경을 읽는다는 사람이 약 14퍼센트였는데 몇 개월이 지난 후 비율이 9%로 떨어졌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헌신 되었고 활동적인 그리스도인 가운데 1/3이 온라인 예배조차 드리지 않게 되었다는 통계이다.
코로나로 인해 삶이 어렵고 마음이 곤고하니 더 하나님을 찾고 말씀을 찾을 것 같지만, 현실은 오히려 반대였다. 사람들은 상당수가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믿음 생활을 한다. 좋지 않다고 비난할 수 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서 제대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필자는 이런 일련의 상황들 속에서 예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예배란 과연 무엇인가? 예배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많은 성도가 정말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지만, 예배가 무엇인지 왜 드려야 하는지 왜 중요한지 구체적인 이유를 잘 모른다. 이번 글을 통해 코로나로 인해 더 희미해져만 가는 예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새겨보자.
예배란 무엇인가? 매주 드리지만, 예배의 구체적 의미를 정의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개역 한글 성경에서 예배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36개가 나온다. 구약에서 예배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샤하’를 사용했다. 이것은 머리를 숙인다는 의미다. ‘아바드’라는 단어도 쓰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이다. 이 두 단어를 종합해 보면 예배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절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예배는 자주 제사로 표현되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예배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22:5)”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것을 예배로 표현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약에는 희생제사가 포함되는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믿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친히 대속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예배는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신약에서 예배라는 단어는 ‘프로스퀴네오’이다. 이 단어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주 너의 하나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신 말씀에서 ‘섬긴다’는 단어다. 예배라는 단어가 섬긴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강변교회를 은퇴하신 김명혁 목사님은 예배를 문안 인사에 비유했다.
“예배를 쉽게 설명하면 효자 효녀들이 아침저녁마다 부모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는 효심이 많은 신자가 주일 아침과 저녁마다 또는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와서 무릎을 꿇고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문안 인사에는 고마움을 아뢰는 ‘감사’의 인사와 잘못을 고하는 ‘회개’의 인사와 감사를 표하는 ‘드림’의 인사와 바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다짐’의 인사와 무엇을 좀 도와 달라는 ‘요청’의 인사가 포함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종합해 보면 예배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의식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이다. 시편 96편 8절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라고 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고, 예배 받으시기에 마땅하신 분이시다. 세상의 많은 종교에도 예배의 의식이 있다. 이들 종교의식 대부분은 신을 달래어 저주나 재앙을 피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복을 받는 데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는 복을 빌거나 재앙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행위이다. 예배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된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예배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셨다. 이사야 43장 21절에서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예배를 통해 그들과 교통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에서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고 예정하사 구원하신 이유도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엡1:6). 쉽게 말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가 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서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관심이 예배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과하게 찬양하는 제자들을 책망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저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돌의 입을 열어서도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 표현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예배란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겼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예배였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의 목적일 뿐 아니라 구원하신 목적이기도 하다. 인간은 예배 안에서만 참으로 인간다워 진다. 예배하는 존재일 때 가장 가치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예배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을 섬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제사라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했다. 하지만 제사는 그들의 삶의 향방을 갈라놓고 말았다. 제대로 하나님을 예배했던 아벨은 하나님께 열납되었고, 가인은 거부되었다. 예배가 인생의 방향을 가른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때이다. 하지만 주님은 지금도 예배하는 그곳에 임재하고 계신다. 예배하는 곳이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