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나의 목자시니
미국에 와서 산지가 사십여 년이 되어간다. 뒤를 돌아보니 시편의 말씀같이 슬픔과 노여움의 범벅이다. 그런데 새해 전에 사십이 되는 둘째 사위에게 그간의 인생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대박’ Great!이라고 대답한다. 사십 세 생일을 맞이하여 그의 아내인 둘째 딸은 대단한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민 일세와 이세의 차이인가? 아니면 관점인가? 그러나 나도 할 말이 있다. 시편 23편이다. 양같이 어리석고 멀리 보지 못하는 내게 예수그리스도가 목자가 되어주셨다. 그래서 지금은 부족함이 없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마련해 주셔서 쉴 수가 있었고 목 마를 때 해갈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갈 수 없을 정도로 숨막힐 때 내 영혼을 다시 일어서게 해 주셨고 예수님의 이름을 생각해 예수님께서 옳은 길로 인도해 주셨다.
사실 죽을 수 밖에 없는 사고 사건 속에서도 일하셔서 보호해 주셨다. 그리고 삶의 고비마다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셨다. 살면서 다윗같이 죽이겠다고 달겨드는 원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인간관계 속에서 내 편이 되어 주시니 황공할 뿐이다. 앞으로의 삶도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굳게 의지하며 그의 장막에 영원히 거할 것이다. 여섯 절의 이 시는 나의 신앙고백이다. 아직도 나의 거역적 속성과 고집은 나를 구덩이에 빠지게 하고 마음의 화평을 깬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두려움이 임하기도 한다. 원수가 나타나 물질적이나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공격한다. 그때마다 주께서 일하시고 함께하시니 다시 일어서게 된다. 만병의 80%가 스트레스라고 하니 삶이 만만치 않다. 곡예하듯이 살면서도 오뚝이같이 일어서는 것은 오로지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목자 없는 양같이 방황한다. 그런데 그들은 대박이라며 자신을 기쁘게 하며 산다.
모든 인종이 섞여사는 이 사회에서는 다윗과 같이 고난 가운데서 깊이 주님을 묵상할 시간들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삶 자체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건지…… 그래도 부모가 구심점이 되어 연말연시에 모여 십여 년 만에 가족사진을 찍었다. 손자와 손녀, 자녀들, 사위들까지 모두 모이니 15명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기도 제목이지만 주께서는 이렇게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어 주셨다. 주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이런저런 이유로 일인 가족이 늘어나는 시대가 되었다. 교회 공동체는 전염병처럼 번지는 이 사회의 외로움병을 달래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주님의 몸인 교회가 성도들을 가족으로 묶고 있다. 그러나 극한 외로움과 가난은 성도의 필수과목이기에 그런 분들도 주께서 함께하신다. 사람의 위로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견딜 때 고난은 절대로 낭비되지 않는다.
일전에는 참으로 꼬이고 꼬인 삶 속에서 앞이 안 보이는 한 성도와 대화했다. 공황장애 증상이 다시 찾아와 주께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개천의 용으로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이가 그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방 안에서 컴퓨터 한 개로 씨름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에 나가지만 오십 대인 그가 젊은 층이고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한다.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잘 모르지만 믿음의 공동체가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믿음의 공동체는 회개가 있고 간증이 살아있다. 부활하신 주님이 성도들 안에 역동적으로 역사하신다. 이제 그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한 명 바라보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한국의 노모에게 자신의 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미국에 거주한다고 한다. 악한 아내를 만나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말한다. 사연을 들어봐도 아내가 참으로 악하다. 그런데 요즘엔 악한 것과 약한 것이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성경의 말씀과 같이 남편이 아내를 약한 그릇으로 여기며 품을 수는 없었을까? 감정의 소모가 가장 가까워야 할 아내에게서 오다 보니 가정은 깨지고 공황장애까지 이른 것이다. 간간이 소식을 전하지만 다음에는 주께 매달리는 그 형제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듣기를 기대한다.
건강한 마음이란 자신이 처한 곳에서 해야 할 일을 제때에 하는 것이라고 한 정신과 의사는 말한다. 성경의 요셉이라는 인물이 떠오른다. 종살이든 옥살이든 처해진 상황에서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흔들림 없이 감당했다.
올해도 새해로 하나님이 주셨다. 내 생명의 주인이신 주께서 행하실 놀라운 일들이 기대된다. 주는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가 해야 할 일은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