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칼럼] 하늘에 귀를 대고

내 인생의 여정을 가다가 진정 나를 만나는 날이 있다. 하늘에 귀를 대고 하나님과 관통하는 때이다. 그것은 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에도 갇히지 않은, 그런 것들을 넘어 내 생각이 끝나는 자리이리라. 그럴 때 나는 내게서 일어나는 감사와 감동에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눈을 감아버린다.

그렇다. 삶이란 어쩌면 소통하는 실력이고 끝까지 사랑하는 인내이리라. 그렇게 준비된 사람에게만 스승이 나타나고 몸이 저절로 춤춰지며 마음 안에 막힌 것들이 뚫어지고 풀어내지지 않을까.

내 핸드폰을 열면 제일 먼저 바탕화면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라는 글이 뜬다. 그 때문에 요즘은 살면서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를 살고 있나 자꾸 돌아보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아름답게 사는 것이 뭘까? 저마다 추구하는 삶이 다르겠지만 나는 하와이 친정에 다니러 가면 정처 없이 앉아서 파란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그리곤 저 바다처럼 사는 인생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바다는 언제 찾아가 보아도 늙지 않고 바래지도 않는 그저 파란 본연의 자태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바다 속에 무궁무진한 보화들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온갖 쓰레기나 오물을 던져도 흔적도 없이 다 품어주는 바다….  나는 그 바다를 보면서 바다로 오신 주님을 만난다.

그렇다. 하늘에 귀를 대고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쏟아내는 바다는 엄청난 위력이 있다. 마치 흙의 먼지로 만든 연약한 사람 속에 하나님의 숨이 들어가니까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이 되었듯이 말이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집사님 내외분은 중국 땅에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바다처럼 품고 자신의 이름조차 ‘바다’로 바꾸고 그 땅으로 떠났다.

요즘을 사는 거의 많은 사람들은 분주병에 걸려 있는 것 같다. 매일 매일의 삶에 쫓겨서 사는 그들의 소원은 한번 실컷 자보는 거라고…. 아무 일 안하고 그냥 푸-욱 쉬어 보는 거라고…. 나이가 들수록 쌓은 경륜을 갖고 더 많이 품어주고 더 너그러워 진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오히려 더 많은 집착의 끈들로 얽히고 얽혀서 마음의 질서가 무너진 사람들, 그래서 잠 잘 시간도 없고 지긋이 앉아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푸념을 하고 산다.

그러나 하늘에 귀를 대고 사는 위대한 사람들, 그들은 땅의 잡다한 소리에 마음을 쓰고 머리를 써서 자신의 먹고사는 일만이 유일한 물음이 아닌 바쁘고 여유 없는 삶 가운데서도 영혼을 살리는 일로 마음을 쓰고 몸을 쓰는 삶을 살리라. 그런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난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래서 요즘같이 주위에 맘 아프고 몸 아픈 이들이 많은 때엔 더욱이 그들에게 신중하고 소중하게 관심하고 전심으로 다가가 주는 삶이 귀하지 않을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늘의 능력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일이리라. 그것은 우리가 이 땅의 것들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귀를 대고 하늘의 무궁무진한 신령한 것들을 받아서 이 땅을 살아내는 자의 삶이리라.

그래서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셨기에 이 첫째 되는 것이 없으면 그 다음 우리가 하는 모든 수고는 꽝이지 않을까.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란 원리이고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이 곧 삶의 능력이리라.

그렇다. 내 부모님은 나를 낳으신 것으로 그들의 하실 일을 다 하셨다. 나머지는 내 인생이다. 그 인생 속에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나의 영혼을 점점 더 크게 만들어 가는 작업은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더 쉬워지고 더 맛나게 되리라. 그래서 아 주님! 벌써 다 주셨군요! 라는 감탄과 감격을 매일 먹는 일용할 양식처럼 말하며 살아가는 것이 라크마이고 하늘에 귀를 대고 사는 자가 누리는 특권이리라.

장사라 사모

빛과소금의교회

‘영의 행복’